김용옥 교수님의 고구려 패러다임


황하강 유역의 주나라 제후국들이 수백년간의 내전 상황으로 막강한 군사적 기술을 축척한다.

진나라가 통일한 후, 바로 망하고, 한나라가 들어선 후, 앞선 군사기술로 고조선을 패망시킨다.

이는 마치 ,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전 상황을 통일한 후 조선 정벌을 꾀한 것과 유사한 사태이다.

 

고조선이 현재 동북삼성인, 요녕성, 흑룡강성 , 길림성과 한반도 유역에서 조그만 나라들로 분할된다.

이때 부여가 세를 떨치고 , 이후 고구려 , 백제 , 신라가 강국으로 등장한다.

이 중 고구려는 휘하에 , 말갈족(여진족) , 거란족을 포함하는 제국이었다.

이 때까지는 한족으로 대변되는 중화문명과 고조선을 계승하는 조선문명이 대등한 문명으로 존재하는 시기였다.

 

북위의 무천진 군벌인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고 그후  당나라가 들어서며, 그 기간동안

 고구려와 100년 전쟁에 돌입한다.

결국 당나라는 고구려를 무력으로 패망시키지는 못하고, 신라와의 연합과 , 고구려 내분으로 고구려를 패망시킨다.

이 때 50여년의 공백기가 있으나 ,고구려 유민은 발해를 세워 , 남북국(신라,발해)시대가 900년대까지 유지된다.

 

사실 한족은 고조선 문명침공으로 불행이 시작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.

당나라 시기까지만 해도, 그래도 한족이 중원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았으나, 발해가 멸망하고, 동북삼성의 세력균형을

유지해주던 주도세력이 사라진 후, 한족은 피지배 민족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.

 

먼저, 발해명망후, 조선문명과 같이 지내던 , 거란족이 요를 세워 , 중원의 북쪽 반을 지배한다.

이들이 고려를 깨려 했지만, 두 번의 전쟁으로 모두 패하고, 고려, 송, 거란의 평화가 유지된다.

 

이 후 , 윤관의 9성 개척으로, 울며불며 성의 반환을 요구하던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워 중국의 북송을 멸망시키고,

남송 정권은 온갖 치욕을 여진족에게 당한다.

 

이때 , 몽고가 일어서고, 중국은 완전한 , 피지배민족으로 남고, 고려만 부마국으로 자치권을 유지하는 유일한 문명이

된다.

 

이 후, 명나라가 들어서고, 이기간 250년만 한족이 중원을 다스린다.

여기서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조선족 출신이라는 의혹들이 아주 많다.

 

예로부터 전해지는 말이 있다. 왕은 북방민족에서 나온다라는 말이다.

 

1600년경 초, 건주여진쪽에서 , 누르하치라는 인물이 나와 여진족을 통일한다.

이 누르하치의 5대조가 이성계의 휘하에 있던 여진족 추장이었다.

 

이 후 명나라는 이자성의 난과 오삼계의 반란을 계기로 만주족에 완전히 복속되고

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.

 

고구려 패러다임이란, 중원과 한반도 만주로 대변되는 조선문명은 서로 다른 문명이어서,

군사적 힘이나, 문화적 우월사상인 중화사상으로는 ,서로 지배/피지배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는 사상이다.

이를 강압하려할 경우, 그에 대한 반동으로, 더 큰 비극이 초래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고,

이것이 고구려 멸망후 , 한족의 북방민족하의 피지배민족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하는 사상이다.


1 2 3 4 5 6 7 8 9 10 다음